붓다가야사 주지 동국

꽃이 피었다가 바람에 떨어진다. 대숲은 가을 바람이 제법 스산하다. 성성한 바람에 실려온 찬 기운은 지난 여름의 적적함을 식혀주기엔 아직 역부족이지만, 근년 들어 바람 기운은 점점 거세진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행복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내 삶은 왜 이렇게 엉망진창일까”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성공하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행복하게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사실 행복에는 어떤 기준도 없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이 꼭 행복한 사람은 아닌 까닭이다. 우리는 매일 행복한 날을 고대하며 살아간다. 좋은 날이 와서 성공하고 복을 얻고 싶은 욕망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재수 끝에 합격한 어떤 시험이 내 삶에 큰 행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면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 좋고 나쁜 날들의 기준은 우리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 좋다고 판단하면 행복한 날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쁜 날이 된다. 살면서 좋은 날만 계속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루 하루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처럼 산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겠지만 그렇게 살고자 하면 마음 심보를 고쳐야 한다. 현실이 힘들어도 즐겁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복잡한 마음이 풀어지고 편안해질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날만 고집한들 그것을 이룰 수는 없다. 힘든 시절을 한탄해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벗어날 궁리는 어디든 있게 마련이다.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다만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힘든 시기에 봉착했다면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즐거웠던 때를 생각하고 비탄에 빠지거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려 한다면 마음만 더욱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좋은 날이라도 행복한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 반대로 괴로움 속에 있다면 좀 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걷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고 나쁨에 대한 감정을 모두 내려 놓아야 한다.

두 번째, 지금의 현실이 다소 부족하고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만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만족하면 불만이 사라지고 욕심이 줄어드는 까닭에 삶의 걱정거리도 작어진다. 만족하면 여유가 생기고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 번째, 절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모아서 땀흘려 일하고 노력해야 행복해진다. 지금 삶이 어려움에 봉착했다면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이다. 기회가 올 때 바로 일어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으면 좋겠다.

“차가움이 한번 뼈 속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어찌 매화꽃이 코를 찌르는 짙은 향기를 얻으리요”(不時一番 寒徹骨 爭得梅花 撲鼻香). 옛 황벽선사의 시 한 대목이다. 어둡고 긴 시간이 지나야 좋은 매화꽃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등반가들은 산행이 아무리 힘들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상을 향해 올라가서 끝내 행복을 누리지 않는가.

산꼭대기에 걸친 구름을 보면 신선이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화차를 끊이는 잠깐 동안의 기다림도 마음을 살짝 들뜨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헤아리지 못했던 곳에서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지낸다. 생각이 많으면 주변의 소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유로움을 찾아야 한다. 쉬는 여백의 시간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만블라선원 주지 동국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