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승 자유기고가

대한민국은 뚜렷한 사계절이 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이라는데, 여름만 있는 국가라던가 겨울만 있는 나라에서는 이것이 부러운 일이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중, 선진국들이 온대에 걸쳐 있는 것을 고려해 보면 정이 드는 것 외에는 자랑거리로 삼기에는 조금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으려고 하니 무리가 되는 것이지 실제로는 엄청난 영향력을 지녔다. 당장 오늘 내일 입을 옷과 난방, 냉방 등등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스며들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계절이다. 의복과 냉난방도 그렇지만, 먹는 음식도 계절에 따라 얼마나 크게 바뀌는가? 그야말로 의식주(衣食住)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녀석이 바로 사계절인 것이다. 이 이상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은 공기와 물 등의 더 원초적이고 엘리멘탈한 느낌의 것들 밖에 없는 듯하다. 제대로 표현하자면, 사계절이 우리 곁에 스며들어 왔다거나, 사계절이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계절에 등에 업혀 있다는 것이 맞는 말씀일 것이다. 우리들은 사계절이라는 물결위에서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 물결은 매년 조금씩은 다르지만, 그래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일정한 흐름과 강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흐름을 대략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그 파고(波高)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봄이면 겨울옷을 집어넣고 봄옷을 꺼내며, 대청소를 준비하는 등등의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사계절, 심지어 농경문화였던 과거에는 24절기로 나누어 맞이했던 거대한 흐름의 파도. 이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때는 언제일까? 드라마틱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고 봐도 좋다. 겨우내 쌓인 눈 속에서 여리 디 여린 연둣빛 이파리로 동토(凍土)를 헤치고 나오는 해동기 즈음은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뜨거운 햇살로 모든 것을 죽일 듯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의 생물의 전성기를 맞이하게끔 하는 여름은 어떠한가? 봄부터 가을까지 토양과 태양의 에너지를 모아 그 결실을 열매로 맺는 가을걷이 무렵은 신기하지 아니하고 숙연하지 아니한가?

물론,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도 그저 ‘나는 여름이 좋아’, ‘나는 가을이 좋아’하는 말들은 몇 번씩 듣고 쓰고 해 보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거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철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장마철이다. 더우면서 습하고, 툭하면 비가 쏟아지는 계절. 일상생활은 불편하고, 불쾌지수는 올라가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조차 제대로 못 받는 계절이다. 내가 이 글에서 아무리 장마를 변호한다고 해도 좋아하게 될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미움받는 시절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조금만 분노와 짜증을 누그러뜨리고 생각해 보자. 장마란 또 얼마나 대단한 조물주의 작품이며 드라마인가? 생각해보라, 장마철에 비구름이 오락가락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땡볕에 쏟아지는 여름을, 그것도 해가 가장 긴 하지(夏至)부터 그대로 직사광선을 맞으며 버텨야 한다. 당연히 폭염은 늘어나게 되고, 생물들은 전성기를 맞기도 전에 너무 강한 열기와 직사광선에 죽어가기 십상이 된다. 대지에 흐르는 수량(水量)은 줄어들 것이며, 가을을 준비해야 하는 식물들은 줄어든 수량과 늘어난 폭염에 그 준비보다는 자기 살 길을 찾아야 할 판이 된다. 여름은 더 덥고 길어질 것이며, 가뭄이 들어 인간 삶도 쾌적하기는커녕 더 힘들어지게 된다. 비록 장마란 것이 다습(多濕)하기에 끈적끈적하며, 폭우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기에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그 역시 자연의 균형과 흐름인 것이지 그것 자체가 없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실, 그렇게 쾌적한 삶을 원한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체가 모두 없어져 버리는 게 최고가 아니겠는가?

장마, 그것은 여름의 또 다른 드라마인 것이다. 마라톤 선수가 42.195Km를 뛰는 동안 음료수를 집어 들고 뛰는 것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여름을 버틸 수 있도록 비구름과 수분을 우리에게 공급해주는 소중한 시기인 것이다. 비록 그것이 우리의 불쾌지수를 올리고, 가끔은 수해(水害)를 입히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없어져야 할 존재는 아니라는 말씀이다. 수학과 과학 공부가 아무리 짜증나는 녀석이어도 없어져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장마, 그것을 짜증으로 받아들이는 가 생명수로 받아들이는가는 당신의 판단이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드라마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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