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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중 세도건설 대표 겸 안산청양향우회장 "청양 산골소년 자수성가 이야기…충청인 결기로 극복했죠"

기사승인 2020.04.01  10: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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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번 사업실패 뒤, 이제 매출 100억대 급성장 이뤄…안산서 철구조물 신화적 인물로 평가, 신뢰가 성공 열쇠

유운중 세도건설 대표는 중후하게 느껴지는 흰머리였지만, 얼굴은 주름 한점없는 청년같았다. 충남 청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과 서울 등 객지를 떠돌다 또다시 청양으로 귀향도 여러 번 했다. 유운중 대표가 인터뷰를 마치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사진=최제영 大記者

유운중 세도건설 대표는 중후하게 느껴지는 흰머리였지만, 얼굴은 주름 한점없는 청년같이 보였다. 충남 청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과 서울 등 객지를 떠돌다 또다시 청양으로 귀향도 여러번 했다. '사업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옳았다. 친구와 사회에서 만난 동생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다고 회고하는 유 대표는 지금도 그들과의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철구조물 업계에서는 그를 두고 '신화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연 매출 100억원 대를 오르내리는 사업 성공의 열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무엇보다 사람간에 이뤄지는 '신뢰'라고 잘라 말했다. 사업이 어려울때 자신을 기다려준 거래처가 없었다면 지금의 '유운중'은 없었을거라 말하면서 앞으로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내 한승미씨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과거 지난 날 자신이 어려울때 옆에서 지켜준게 고맙고 지금은 사업의 동반자로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충청인 결기로 살아왔다는 유 대표는 충청인도 이제 단합하고 하나가 될때가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운중 대표를 만나 청양 소년이 오늘에 있기까지의 얘기를 들어봤다.

Q고향이 청양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청양은 산과 들로 둘러쌓인 곳이다. 산세가 좋은 곳이다. 그런 산골짜기에서 태어났다. 고향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행복하다. 어릴적 친구들과 놀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누구나 그렇지만 자신이 태어난 고향은 어머니 품속과도 같다. 어머니가 중학교 3학년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그리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훗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지만 늘 부모님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를 있게한 부모님 아닌가. 어려울때 나를 돌아보고 희망을 노래할 때도 부모님을 그리워하면서 살았다. 청양이라는 말만 들어도 반갑고 흥분이 될 정도다.

Q어릴적 청양을 떠났나.

청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친척집으로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양말과 속옷 도매상을 하는 친척이었는데 생활하는데 좀 불편했다. 5년 정도를 대전에서 보내고 다시 청양으로 내려왔다. 농사일을 도와주는 등 집에서 한 1년 간을 지내고 다시 청양을 떠나 객지로 나왔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상경과 귀향을 교차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사회생활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많았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면서 인생을 배우고 느끼는 일들이 많았다.

Q안산에는 언제 올라왔나.

1987년 27살이 되던해로 기억된다. 반월공단에 있는 의약품 공장에 들어갔다. 아무런 인연도 없이 올라온 안산은 낮선 곳이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 열심히 일을 해야 살수 있다는 신념으로 회사에 충실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직장생활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인의 소개로 서울 여의도 무역회사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3년 정도 근무를 한 뒤에 다니던 무역회사도 퇴사하고 다시 안산으로 다시 내려오게 됐다. 어찌보면 젊은 날의 초상을 얘기하는 듯 하다. 어려움이 많은 세월을 보냈다.

Q누구나 젊은날에는 고생하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안산에 내려와 시작한게 용역회사였다. 결혼을 하고난 뒤, 힘이 생기고 용기도 솟아났다.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묻어났다. 아내는 나를 끔찍히 사랑하고 지켜주는 동반자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늘 용기를 준 사람이다.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용역회사는 그야말로 잘 나갔다. 돈도 벌수 있었다. 그러나 1997년 IMF를 맞으면서 또다시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래서 잠시 고향인 청양으로 내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유운중 청양향우회장이 부인 한승미 씨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 회장은 한승미씨가 인생의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라고 말했다.

Q배우자를 잘 만났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 용역회사를 그만두고 청양으로 내려갔다가 서울 마포로 상경한 것도 아내 덕분이다. 처갓집이 마포인데 처남 덕분에 중고 TV와 냉장고를 수거해 수리를 한뒤 판매하는 재활용센터를 하게됐다. 처남의 사업장이었지만 말이다. 고생만큼 돈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곁에 있고 자식을 낳고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세상이 마음먹은 것 처럼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늘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면서 훗날의 성공을 꿈꾸며 살아왔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에 사람들이 좋았다. 훗날을 기대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Q자수성가의 역전 드라마가 궁금하다.

1999년에 다시 안산에서 부활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철골공사를 하는 친구가 무조건 내려오라는 말에 다시 아무런 생각없이 안산으로 내려왔다. 친구 회사에서 철골 제작 설치하는 기술을 배우고 나중에는 제작도도 배웠다. 그리고 직원관리를 도맡아 하면서 친구는 영업과 사업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말 고마운 친구다. 오늘날 내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게 바로 그 친구다. 당시 안산의 건설 경기는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특히 철골공사는 풍년이었다. 내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듯 했다.

Q회사를 차린건 언젠가.

2007년에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를 나와 내가 회사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금의 '세도건설'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어찌보면 본격적으로 나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출이 얼마되지 않아 결국 3억 원이라는 거액의 부도를 맞게된 것이다. 그러나 고마운 분들이 많다. 신의 하나로 나를 믿고 기다려준 거래처 사장님들이다. 아내와 내가 일일이 찾아가 사정을 한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그 과정에는 사회에서 만난 동생의 힘이 컸다. 2010년으로 기억되는데 그때부터 나의 전성기의 개막을 알렸다.

유운중 청양향우회장이 2019년 송년의 밤 행사에서 향우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그는 충청인의 자긍심으로 사업의 성공을 일궈냈다고 말했다.

Q주변에서는 철골공사의 신화적 존재라고 하는데.

그말도 맞는 말이다. 사업이 안정권에 들어가면서 일이 술술 잘 풀리기 시작했다. 사업도 신의가 중요하다. 어려울때 나를 기다려준 거래처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자재값이 좀 비싸더라고 그들을 배신할 수 없다. 앞으도로 마찬가지다. 2014년부터 연 매출이 100억원이 넘는다. 내 자신도 깜짝 놀랄 일이다. 현재 다른 회사도 있는데 아내가 대표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4개의 공사 현장이 있는데 아무런 지장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Q청양향우회장을 맡고 있는데.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충남 청양 산골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고향을 그리며 용기를 얻었다. 충청인의 결기로 버텼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청양향후회장을 맡고 있고 한때는 충청향우회 시군민연합회장을 해봤다. 태어난 고향은 누구나 좋아하고 그리워한다. 안산에는 충청인이 많이 살고 있다. 하지만 단합하는 부분이 좀 약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충청인도 하나로 단합해야 한다고 믿고있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충청인의 목소리가 높다는 평가가 많다. 좀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Q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름대로 안산에서 자수성가한 편에 속한다. 있는 사람이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어려운 향우를 돕고 용기를 줘야한다. 작은 정성이지만 청양군에 장학금을 전달해 준 적이 있다. 너무나 고마워 하더라. 나의 모교인 청양중학교에도 운동장 반별 천막을 설치해 준적이 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이 같은 후원을 계속할 생각이다. 아내인 한승미씨는 참으로 내인생에 있어 어려울때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큰아들 유선학, 작은 아들 유선우에게도 잘 커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어수선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먹구름은 거칠거라 굳데 믿고있다.

인터뷰=최제영 大記者

최제영 기자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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