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고 그림으로 그려 봅니다. 그동안 숱하게 찍어본 핸드폰의 셀 카 사진과 아주 다릅니다. 닮은 듯도 하고 다른 듯도 합니다. 기쁜 나, 슬픈 나, 고민하는 나, 철이 없는 나, 여러 얼굴의 내가 보입니다.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좋을 때라고 이야기 하지만 10대도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팍팍하고 내일은 불안합니다. 지금 잘 하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그 고민의 시간들을 지금 펼쳐 보입니다.

색종이도 오리고 오랜만에 크레용도 다시 만져보고 책상위에 굴러다니던 싸인펜으로 장난처럼, 낙서하듯 그림을 그렸습니다. 내 얼굴과, 등교 길에 본 나무와 꽃, 새, 풍선도 그려 봅니다. 정해진 방식과 매겨야할 점수가 없으니 참 좋습니다.

어느 철학자의 명제에 빗대 “나는 그린다. 고로 존재 한다”라고 말해도 좋을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린 그림들이 얼핏 마티스나 피카소의 그것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내 스스로에게 주는 칭찬과 격려의 시간이었습니다. 배우고, 실수하고, 또 배웁니다. 우리는 지금 피어나는 중입니다. Blooming days. 임진영‘

제가 조합원으로 있는 피네에서 Blooming days라는 이름으로 작은 그림전시회가 전시중이다. 내년 1월15일까지다. 생전 그림 수업을 특별히 받아 본적이 없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얼굴과 마음을 그려낸 전시회다. 위의 글은 전시회의 취지를 담은 글의 전문이다. 청소년에 대한 관점과 삶에 대한 철학이 잘 담겨 있어서 좋았다. 특히 ‘10대도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팍팍하고 내일은 불안합니다. 지금 잘 하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라는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10대 청소년뿐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간을 살아낸다는 것은 어렵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모든 사람에게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2020년이 왔다. 언제 오려나하는 그 시간 앞에 서 있다. 냉정하다. 그러나 자연스럽다. 2020년에는 또 다른 상황과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 일과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누구도 모른다.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수용할 것인가 뿐이다. 정해진 방식과 점수를 매긴다면 그것은 괴롭고 곤고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짐해 본다.

어떠한 것도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어떻게 형성될지 고정된 것은 없다. 그러니 충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중용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래서 이념도 사람도 어떠한 것도 물신화 시키지 않는다. 있다면 삶의 풍경이 나에게 가르칠 때 배우고 또 배운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나는 오직 모를 뿐이다는 태도가 인식론의 출발임을 다짐한다. 이것이 겸손한 마음이며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이다.

새해에 나는 10대 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한 가지 태도를 견지하려고 한다. 누구나 별 수 없는 존재이다. 실수하게 되어있다. 처음 살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다시 배우면 된다. 다시 살려고 살아가는 것이다. 먼저 경험했다고 전부를 아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과 상황은 이미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자명하고 명백한 사실을 잊고서 지적하고 훈계하고 평가한다. 먼저 경험하고 살았기 때문에 안다고 착각하는 것인데 이를 잊고 자발적 꼰대가 된다. 교만의 삶이다.

새해에는 나의 이웃들과 함께 과거는 용서하고 현재를 수용하며 미래는 격려하면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내 선택의 기준이 무엇보다 행복이기를, 나의 관계가 무엇보다 평화를 지향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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