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선·후배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고파…회원 간 친목도모 최선, 선배들 건강 걱정
임원 단체 카톡 안부 전하며 하루시작…봉사로 어려운 이웃에 정 나누는 게 희망사항

정병연 (재)안산당진향우회장은 당진 얘기만 나오면 언제나 즐겁다고 했다. 충청도 출신이 안산에 많이 살고있지만, 유독 당진 선·후배들을 만나면 엄마의 품속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정병연 회장이 인터뷰를 마치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최제영 大記者

정병연 (재)안산당진향우회장은 당진 얘기만 나오면 언제나 즐겁다고 했다. 충청 출신이 안산에 많이 살고 있지만, 유독 당진 선·후배들을 만나면 엄마의 품속처럼 포근하다고 했다.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정병연 회장의 당진 사랑은 깊이가 있어보였다.

최근 들어 연로한 선배님들의 건강 때문에 월례회의를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도 전했다. 당진 송악출신인 정 회장은 2년간 회장으로 있으면서 임원간의 단톡을 통해 우의를 다졌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회원 간의 친목도모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회원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 정 회장은 당진향우회가 앞으로 봉사단체를 만들어 주변의 이웃을 챙기는 일에 매진하길 바란다고 했다. 충청도는 양반 기질이 있어 경우에 따라 손해를 보고 산다고 진단한 그는 때로 뭉칠 때는 다함께 뭉치는 충청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1983년 당시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감식과 직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삼일초등학교에서 어린이 급식업무에 충실한 정병연 당진향우회장을 만나 고향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Q우선 당진을 소개해 달라.

당진은 안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은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아산만 방조제가 있어 수도권과 근접해 있지만 예전에는 신례원과 온양, 천안 평택을 거쳐 서울과 수도권에 올수 있었다. 이제 그만큼 가까워졌다. 특히 안산은 당진과 근접한 거리에 있다. 한국 천주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솔뫼성지'가 있고 해가 바다에서 솟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왜목마을'이 있는 아주 좋은 시골이다. 제철산업의 중심 '송악 철강단지' 등 다양한 문화관광 인프라와 경제 산업단지로서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어 향후 10년 내 중부권 최고의 관광·경제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Q역사와 문화적인 측면도 있지 않나.

그렇다. 기지시 줄다리기, 김대건신부생가지, 남이흥장군묘일원, 남이흥장군일가유품, 당진 면천읍성, 당진 삼월리 회화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당진 신암사 금동여래좌상,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당진 필경사, 당진 한갑동가옥이 유명하다. 당진 합덕제, 당진포진성, 당진향교, 면천 은행나무, 면천향교, 안국사지 석불입상, 안국사지 석탑도 빼놓을 수 없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영랑사 대웅전, 영랑사 범종, 영탑사 범종, 영탑사 약사여래상, 영탑사 칠층석탑, 이만유장군유물, 이의무신도비, 채운포 석교비가 자리하고 있다.

Q당진향우회장으로 언제 취임을 했나.

평소 당진사랑이 푹 빠져 살고 있었다. 회원으로 매달 월례회의에 나가고 고향 선후배들과 교류를 이어왔다. 그러던중 지난 2017년 12월에 당진향우회장으로 취임을 하게됐다. 무한한 영광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향우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임기가 2년인데 이제 얼마 후면 차기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려고 한다. 2년동안 회원들과 지낸 일들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고향 선후배만 만나면 웃음이 나오고 즐겁다. 고향이 같다는 것 하나만으로 편안하다. 앞으로도 당진에 대한 사랑은 영원할거라고 생각한다.

정병연 회장(중앙)이 지난 가을 당진향우회 죽도 야유회에서 박성환 사무국장(오른쪽)과 이대용 재무국장과 나란히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Q안산과 인천, 서울에도 당진 향우회가 있다는데.

당진이 고향인 분들이 인천에 많이 살고 있다. 예전에 서산 당진 분들이 바다를 이용해 손쉽게 이동한 곳이 바로 인천이다. 우스갯소리로 '서산 당진에서 국회의원 낙선하면 인천으로 가라, 그러면 당선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때문에 재인 당진향우회가 규모도 크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행사 때마다 인천을 가는데 엄청난 회원들이 모여들고 있다. 재경 당진향우회도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 있는 재경 향우회 역시 단합이 잘되고 있다. 당진출신들이 경향 각지에서 모이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Q당진시 행사에도 안산당진 향우회가 참석을 하고 있나.

참석할 정도가 아니다. 당진시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서해안 고속도로 송악 IC에 들어서면 '서울과 안산'이라는 이정표가 나올 정도다. 당진에서 매년 기지시 줄다리기와 당진시 체육대회, 해나루 고구마 축제에도 꼭 안산 분들을 초청하고있다. 행사 때마다 후한 대접을 받고 오는데 늘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당진시에서 이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에 대해 늘 감사함을 간직하고 있다. 안산이 당진과 가까이 있다는 이유도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고향 행사에 주기적으로 참석할 수 있다는 자체로 즐거운 일이라 보고있다.

Q향우회 임원들에 대한 얘기도 궁금하다.

평소 소통을 중시하는 편이다. 사람은 누구나 대화를 하면 불협화음이 줄어드는 법이다. 향우회도 마찬가지다. 회장이 되고나서 11명의 임원을 구성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단체카톡을 만들었다. 매일 아침이면 문안안사(?)를 내가 올린다. 안부를 전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힘을 내라고 파이팅을 보내면 임원들이 늘 고맙다고 답변을 해온다. 반응이 참 좋다. 서옥순 여성국장에게 SNS상을 주려고 한다. 한때 몸이 불편했는데도 당진향우회 봉사에 열성적이다. 고맙게 생각한다. 2년 동안 나를 중심으로 당진향우회 발전을 위해 묵묵히 도와준 임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Q 연로한 회원분들 근황은 어떤가.

당진향우회 역사가 길기 때문에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많은 편이다. 그런 탓에 건강이 안 좋아 고생하는 선배님들이 있다. 마음이 아프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재활치료 중인 분들이 있는데 늘 걱정스런 마음이다. 모든 선배님들이 건강하길 이 자리를 빌어 기도드린다. 내년부터는 70세 이상 연회비를 납부한 분들을 대상으로 시니어상을 마련했다.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같은 상을 준비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연회비를 면제해주는 방식이다. 이번에는 차재덕 역대회장님을 선정했다. 차재덕 역대회장님은 당진사랑이 무척이나 강하신 분이다.

당진향우회 죽도 야유회에서 회원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Q젊은 회원들도 많지 않은가.

요즘은 나이가 비교적 젊은 회원들이 하나둘씩 가입을 하고 있는 추세다. 어느 단체나 젊은 피가 흐른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2년간 향우회를 이끌면서 박성환 사무국장과 이대용 재무국장, 방철만 경조국장, 김종철 홍보국장, 서옥순 여성국장 등이 애를 많이 썼다. 앞으로 이런 회원들이 당진향우회를 이끌어 갈 것으로 생각된다. 때로는 향우들이 똘똘 뭉치는 결집도 필요하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향우들이다.

Q개인적인 소개도 부탁드린다.

그동안 교육청 소속 직원으로 학교 급식 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조리사회장을 2회나 역임했는데, 안산초교, 경일초교, 성포초교, 덕성초교, 송운초교를 거쳐 지금은 삼일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깨어있는 자세로 주변인들과 함께한다는 각오로 민주평통 2기를 수료하는 등 주변의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도 했다. 평화의 집 김장봉사, 독거노인 목욕, 반찬봉사, 새터민 말동무봉사 등이 대표적이다. 다문화와 함께하는 세상 구현을 위해 다문화 상담사 자격증과 복지사, 요양보호사, 웃음치료사, 보육교사 자격증도 땄다. 부끄럽지만 2, 3급 기관장 표창도 받은 바 있다.

Q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

당진향우회가 앞으로도 영원하길 바란다. 그리고 봉사단체 등을 만들어 주변의 이웃도 생각하는 향우회가 되길 원한다. 그동안 공직자 신분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여러 향우들의 협조로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1983년 당시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 감식과 직원으로 근무하다 1997년 교육청으로 전직해 지금은 삼일초등학교 급식을 책임지고 있다.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에는 복지사업의 꿈을 가지고 있다. 다시한번 당진향우들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인터뷰=최제영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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