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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소회

기사승인 2019.09.27  17: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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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햇살이 놀러왔다. 종종걸음으로 양가를 들러 명절을 보내고 돌아온 후, 소파에 앉아 피곤한 몸을 다독이는 시간, 햇살이 며칠간의 일정이 궁금한지 기웃거린다. 까르르 웃음소리 귀에 쟁쟁한데, 고향에 두고 온 그림들이 벌써 까무룩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풍속도가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내게는 명절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의미 있는 풍습이다. 특히, 양가 부모님 중 한 분씩을 여읜 다음부터 명절의 의미가 특별해졌다. 네 분 다 살아 계셨을 때의 관망 모드에서, 책임 모드로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시댁은 아버님이 둘째라서, 친정은 기독교 집안이어서 가볍게 대했던 명절을, 두 분의 부재로 무게감을 달리했다.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좀 더 어른의 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기대기보다는 보살펴드려야 할 홀로 남은 분들에 대한 생각도 짠하다.

그래도 명절을 준비하는 시간들이 좋다. 정성껏 제사 음식을 만들다 보면 경건하게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짚어갈 수 있다. 사람들과 나눌 선물을 준비하다 보면 한뼘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체증도 마다않고 달려가는 것은 기다리는 누군가가 고향에 있다는 기대 때문이고. 내게 명절은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을 붙잡아 두고 소중한 것들을 꺼내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번 한가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명절의 의미를 생각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이 바빴다. 고되긴 했지만 의미가 있었기에 즐겁게 준비했다.

의미를 삭제하고 행동만 보면 달리 보이나 보다. 함께 전을 부치던 큰아이에게서 볼멘소리가 날아왔다. “제사가 없었으면 좋겠어.” 형님이 나머지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가족들이 먹을 고기를 재고, 전을 부치는 것뿐인데도, 큰아이는 선뜻 이해 못하는 분위기다.

쿵, 놀라움과 서늘함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해도, 내 아이들만큼은 차례나 제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차 싶었다.

서둘러 “할머니를 위해서, 외할아버지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내게 위로가 된다.”고 이야기해 보지만 왠지 궁색한 변명 같다. 자연스레 의미가 건너가는 날을 기대한다.

명절에 반가운 마음을 갖고 갔다가 따뜻한 마음을 한아름 안아오던 시절은 분명히 끝났다. 차례 지내는 데서 뒤로 물러나 앉은 시아버지나, 한가위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시간 가는 걸 속상해하던 친정어머니를 두고 온 마음이 무겁다.

배우자의 빈 자리를 견디며 살아내는 시간에 잠시 햇살 들었다 그늘이 드리우면 더 깊어질 우울감을 알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해도 일을 놓지 못하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만 할 뿐, 뾰족한 대책이 없다. 뵙고 오면서 모두 있을 때의 따스함이 잠시 그리웠다,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들이.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는 청년이 된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형님의 아들은 직장을 나와 사업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고, 오빠의 아들은 나의 작은아이 미래를 걱정한다.

경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발령을 기다리는 친정 조카는 그 사이 아르바이트 중이다. 한때 나의 모습이기도 했던 청춘앓이를 데칼코마니처럼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니, 새삼 어른의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딱히 도와주려는 건 아니지만, 길 잃지 않게 기댈 수 있는 어른은 되어 주고 싶다. 지붕처럼 버티던 분들의 빈 자리가 커갈수록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 더구나 이모할미라는 호칭까지 얻었으니, 연륜이 준 지혜를 꼰대가 아닌, 인생 동료로 나눌 방법도 찾아야겠다.

일상의 흐름에서 살짝 벗어난 한가위, 이제 다음 명절을 위해 잘 접어둘 순간이다. 며칠이 더 지나야 풀릴 피로, 고되어도 명절은 지켜 주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아이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사이 꼴깍 넘어간 해는 그 답을 알고 있을까.

반월신문 webmaster@banw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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