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첫 돌이 지날 무렵부터 엄마, 아빠 정도 단어를 말하기 시작해서, 두 돌이 넘어서면 비로소 간단한 문장을 말하기 시작한다.

30개월 남짓이 되면, 웬만한 말들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이 무엇인지, 아이가 경험한 사실들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말을 잘하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는가 하면 오늘 있었던 일이 아니라 어제, 그제 있었던 일을 혼돈하여 말하기도 하고, 없었던 일을 말하기도 한다.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직접 확인했던 경험담이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피해 아동의 필자가 피해자 변호사로 참여하는 사건이 제법 있다. 수사의 첫번째 단추가 피해아동의 진술을 듣는 것이다.

해바라기센터(성폭력 피해자, 가정 폭력 피해자 등을 지원하고 피해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에서 피해 아동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데, 이때는 아동의 진술을 청취하는 것만 전담하는 숙련된 경찰관이 조사를 담당한다.

자격을 가진 진술조력인도 피해 아동의 옆에서 돕는다. 조사 전부터 피해 아동과 친근하게 놀이도 해주고 장난도 치면서, 조사를 위한 준비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선생님들도 나서서 과정에 참여하고, 영상이 녹화되는 것을 보면 진술을 분석하는 전문가도 영상녹화실 밖에서 조사과정을 관찰한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을 해도 피해 아동은 말을 하지 않는다. 네 살, 다섯 살 남짓해서 충분히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들도 쉽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동학대 사건은 시작부터 어렵다.

형사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을 피해 사실을 확인하는 주된 증거가 되므로 무척 중요한데,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유일하게 목격한 피해 아동이 입을 열지 않으니 사건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어린이집 학대 사건 등에서 CCTV등 다른 증거가 있는 때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피해자인 아동이 경험한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때에는 가해자가 부인하고 아동의 진술이 불분명 하다면, 사실상 가능한 조치가 없다.

그래서 아동학대 사건에서 피해자 변호사로 참여하면서, 아동이 피해사실을 진술하는 것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아동의 피해사실에 관한 진술은 형사절차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요구되는 진술의 정도는 상당부분 달라야 할 것이다.

특히, 조사가 이루어지는 실무를 들여다보면, 매뉴얼처럼 진행되는 사전진술이 집중력이 극도로 낮은 어린 아동들에게는 본 게임에 들어가서 써야할 힘을 빼앗아 간다고 느낀다.

질문의 방식도 문제다. 유도신문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어린 아이가 문제되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문제되는 사건에 관한 직접적인 질문은 허용되어야 한다. 수사과정에서는 진술 청취의 방법을 제한하지 않고, 사후에 법원이 그 당부를 판단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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