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후반 즈음 나는 세 권의 대학노트를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 시인의 시를 옮겨 적은 노트와 외국 시인의 시를 옮긴 노트 그리고 소설이나 수필을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을 옮겨 쓰는 노트였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시집을 읽다 보니 마음을 건드린 시들만 따로 모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이나 수필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라 두고두고 볼 수 없어 아쉬운 대로 생각해 낸 방법이었을 뿐.

내가 하는 일이 ‘필사’라는 것도, 그런 과정이 글을 쓰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도 몰랐다. 그저 옮겨 적은 시를 외우고 조금씩 늘어나는 페이지를 들춰보는 즐거움이 너무나 좋았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도무지 내 안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은 표현을 쓸 때가 가끔 있는데 그 비결이 글을 쓰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서가 아니라 베껴 쓰면서 좋은 문장이 차곡차곡 쌓였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참 오랜만에 우아한 글을 만났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선생의 신작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문학동네).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는 저자는 이 질문과 고뇌 덕택에 얻은 슬기를 조곤조곤 풀어 놓는다.

그는 각종 매체의 부름에 응하여 참혹하게 망가져버린 우리 정치 사회의 민낯을 ‘격’이 있게 썼다. 2013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우리는 무엇을 겪었던가. 남북 관계는 경직되었고 불황의 터널은 길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생때같은 아이들을 잃었고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저마다 자기 감정에 집중할 때 그는 사유에 집중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청을 높여 소리 지르지 않고 빠른 걸음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다만 흐트러짐이나 곁눈질 없이 스스로 가야할 길을 정확히 갔을 뿐이다.

그래서 글이 단단하고 깊고 유려하다. 글이 곧 그 사람이라면 출판사의 서평처럼 저자는 ‘쉽게 웃거나 쉽게 울지는 않지만 상대의 웃음과 울음이 그친 뒤 돌아서서 세수 한 번 하고 오는 사람’이리라.

‘인간의 깊이란 의식적인 말이건 무의식적인 말이건 결국 말의 깊이인데, 한 인간이 가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그 존재의 가장 내밀한 자리와 연결된 말에서만 그 깊이를 기대할 수 있다.(후략)’

이런 생각을 담아 촘촘히 엮은 책을 빠르게 읽을 수는 없는 일. 대강 내용을 훑어보고 넘겨도 좋은 글이 있고, 꼭꼭 씹어서 삼켜야 하는 글이 있음을 안다. 물론 뒷부분의 비평 부분은 슬쩍 버거웠지만 어차피 나를 건드린 것들만 챙길 거라 아쉽지 않았다.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는 대신 컴퓨터 자판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 편하고 좋은 세상이다. 나 역시 지금은 세 권의 노트 대신 블로그를 만들어서 나를 움직인 책과 글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자판을 두드리기가 망설여진다. 베껴 쓴다고 그의 글이 나의 글이 되어 나올 일은 없다.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그의 사유를 조금 천천히 따라가고 싶다. 그의 글에 흠뻑 취하고 싶다. 아무래도 펜을 들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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