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하고 좌절과 희망의 반복..오뚜기처럼 일어나
자유총연맹은 영원한 나의가족…한양대 장학금 쾌척

배윤길 이지택 대표 겸 한국자유총연맹 안산시지부 부회장은 사업과 봉사 그리고 꾾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어린시절 안산에 올라와 일터를 잡고 한동안 적응이 되지않아 다시 대구로 내려갈까 고민도 했다고했다는 배 대표. 하지만 하루이틀이 지나면서 정이들고 반드시 성공을 해야한다는 다짐이 오늘을 있게 했다고 지난 날을 술회했다.

고등학교 장학생으로 안산에 올라와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려움의 연속이었지만 피나는 노력을 경주했다. 야간대학을 다녔고 지금은 한양대에 장학금을 내놓고 있다. 지금도 사업이 안정권에 진입했다고 볼수는 없지만 '희망'이라는 두글자를 염두에 두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뒤늦게 인연을 맺은 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는 평소 꿈꿔오던 '봉사의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봄에 개최한 윷놀이 대회나 작년에 이어 올해 있을 '51사단 민 관 군 경 체육대회'는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를 만나 사업과 봉사 그리고 내일의 얘기를 들어봤다.

Q안산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대구공고에서 전기과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3학년때 장학생으로 아는 지인이 운영하는 자동차 부품회사에 입사했다. 병역특례 업체였다. 5년간을 열심히 일하면서 안산과 인연이 시작됐다. 그때가 1982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안산에 올라온지 얼마 안돼 적응이 되지않아 고민이 많았다. 그때만해도 안산의 치안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원곡동 주공2단지에 기숙사가 있었는데 라성호텔 주변의 포장마차에서 싸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밤만되면 시끄러웠다. 그래서 다시 대구로 내려갈까 고민을 했었다. 지금은 예전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치안상황이 안전하다고 볼수 있는데, 그때는 좀 불안한 마음이 강했다. 지금의 안산은 참 좋은 도시로 변했다. 다문화 글로벌도시 아닌가.

Q사업을 하기 전 과정은 어땠나.

-회사를 그만두고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다. 어찌보면 고향을 떠나 안산으로 왔는데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당시만 해도 은행 대출도 쉽지않아 사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시절이었다. 간단한 옥션 사업을 해봤는데 쉽지가 않았다. 안경판매 영업도 해봤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에 26살에 결혼을 하고 반도체 장비업체에 취업을 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어울리고 싶은 심정이 강했다. 전기기술 계통이었는데 나와 적성도 맞고 일도 재미가 있었다.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한 동기를 부여한 셈이 됐다.

Q창업이 그리 쉽지 않았을 텐데.

-창업을 하기 전 SK하이닉스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다. 그러나 무슨 배짱인지 단호히 거절했다. 지금생각하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해에 내 개인 업체를 차리게 되었다. 물론 큰 도전이었고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도 성공한 단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끊임 없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면된다. 자그마한 규모의 전기제어 반도체 환경장비 업체였다. 그 회사 이름이 드림시스템이다. 당시 나를 포함해서 2명이 일을 했으니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나중에 직원이 4명까지 늘어났지만 회사가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최대 호황을 누린적도 있지만 그게 연속적이지는 못했다. 좌절과 희망의 연속이었다.

Q사업을 접을 정도였나.

-한때 직원이 10명까지 두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업계에서 10명이면 무척 규모가 크다고 볼수 있다. 유통상가에서 임대로 있다가 시화공단에 자가 공장도 마련했을 정도니, 나름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반도체 경기의 몰락으로 회사를 접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 좌절의 시간이 무려 3년 이나 갈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기나긴 터널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지금생각하면 꿈만같은 얘기다.

Q또다른 도전의 시작도 있었다는데.

-그렇다. 2001년에 지금의 '이지텍'이라는 이름으로 법인설립을 하는 결단을 내렸다. 오뚜기처럼 일어나야 한다는 다짐이 컸다. 앞서 하던 전기에어 환경반도체인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직원들도 최정예 요원들만 뭉쳤다. 운영의 방침도 변화를 시도했다. 영업과 설계를 모두 하던 기존 방식을 탈피하고 핵심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부수적인 일들은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어찌보면 상생차원에서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거래처 관계도 주효했다. 전국 어디든 달려가 영업에 매진했다. 그런 결과물로 시화공단에서 신길동으로 공장을 옮기는 성과를 얻었다. 최근에는 화성 송산 테크노파크에 공장부지를 분양받았다. 거의 대출로 이뤄졌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있다.

Q자유총연맹 안산지회 봉사가 대단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건 과분한 칭찬의 말씀이다. 2016년 지인의 소개로 협력업체 전문위원으로 2년 정도 활동하다가 2018년에 부회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주변에서 자유총연맹이 남다른 지역봉사가 대단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평소 봉사를 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나도 이 단체와 동행하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안산시지회 이석희 사무국장을 소개받으면서 인연을 맺게된 것이다.

Q자유총연맹에 대해 기억나는것은 없나.

-짦은 시간이지만 좋은 기억이 많다. 막상 회원으로 가입해 보니 회원들의 봉사정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회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조건없이 봉사하는 자세에 무척이 놀랐다. 그래서 나도 이제부터 솔선수범 봉사에 앞장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올 봄에 있었던 통일기원 풍물 윷놀이 대회 준비위원장을 맡았는데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회원들의 결속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1200여명이 참석했는데, 내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회원은 물론이고 관내 병원과 업체에서 보내준 뜨거운 후원도 감사했다. 지난해에 이어 오는 25일 호수공원에서 있을 '51사단 민 관 군 경 체육대회'도 뜻깊은 행사로 생각된다. 특히 51사단은 화성에 위치해 있는데도 안산과의 인연이 계속되고 있는 부분이 큰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만큼 안산에 대한 비중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Q한양대에도 장학금을 기탁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양대 AMP 42기를 통해 강의를 들으면서 학생들이 학비를 벌기위해 알바를 하는 등 시간을 뺏기다 보니 공부에 소홀하다는 얘기를 듣고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들면서 야간 대학을 다녔다. 1년에 500만원이라는 적은 액수지만 학생들에게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작년에 처음 기탁했는데 올 7월에도 장학금을 전달할 생각이다.

Q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을 살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면 최고가 된다는 평소 소신을 갖고있다. 미래를 위해 피땀을 흘려야 한다는 각오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금하고 있는 사업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노후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여러 자격증을 땄다. 작년에 요트면허 2급부터 1급을 취득했고 드론과 대형 트레일러, 버스면허, 무선통신 자격증 등을 취득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지만 힘차게 내일을 준비하고 싶을 뿐이다. 가족들에게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있다. 가족이 있어 사업에 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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