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설날이다. 예외 없이 많은 분들이 고향을 찾아 성묘를 하고 반가운 부모 형제, 친지들을 만나 정을 나눈다. 애틋하고 정겨운 우리만의 풍속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집안 또는 가족의 행사이거나 오랜 만에 만난 가족이나 친지들 사이에서 정치적 논쟁은 금물이 되었다.

정치적 논쟁은 설득이나 합의보다는 싸움으로 번 질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또한 SNS를 통해서 정치칼럼을 공유한다거나 정치적 견해를 밝혔을 때나 다소 시류에 민감한 소식을 전했을 때, 친한 관계일수록 ‘우리끼리는 정치적 이야기를 삼가자’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듣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는 ‘정치는 정치인들의 몫이니 학생들은 학업에 정진하고 국민들은 생업에 매진하라!’ 이런 것이다.

최근 친구들 사이에서 듣는 가장 흔한 말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니 정치, 종교 이런 거 다 떠나서 우리끼리 건강하게 재미있게 잘 지내자’는 주장이다. 일면 일리 있고 수긍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이 사실은 자기와 정치적 의견이 다른 글들을 쓰거나 올리면 불편하다는 암시임을 잘 알고 있다.

정치는 물과 같이 늘 우리 일상에 있는 것이고 정치는 공기와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따라서 정치를 정치인들에게 맡긴다는 말은 권력의 운용을 정치인에게 전적으로 일임한다는 말로 정치적 특권층이나 독재자들의 단골 요구사항일 뿐이다.

결코 정치를 외면하거나 경원시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에 충실하고 주권자인 국민들이 부릅뜬 눈으로 정치권력을 지켜 볼 때 건전하고 상식적인 민주정치의 실현을 보게 될 것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냉소는 정치인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독점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이 우리 사회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불통의 환경에 익숙해져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좌우익, 또는 남북한이 반복해서 죽고 죽이는, 무서운 체험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 체험에서 생긴 반공이데올로기, 분단이데올로기는 국민의 주권과 자유를 어느 정도 통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 공산주의는 종주국 소련에서조차 사라졌고 막시즘은 실패한 정치사상으로 이미 낙인 되었다. 세계의 정치 질서는 변했고 남북의 분단도 벌써 일제 강점기 36년의 두 배를 뛰어 넘는 73년이 되었다. 이제 질곡의 역사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좋은 정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것이 시대적 소명이고 역사적 책무다.

‘좋은 정치’란 국민이 그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때에만 가능하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기 위해서 주요 정책의 결정과정과 집행을 국민들이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지금보다는 훨씬 더 권력에 대한 국민의 통제와 간섭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제도적인 틀도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 정치, 지방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째이다. 촛불시민혁명에 의해 탄생한 정부답지 않게 개혁의 속도와 질은 국민의 눈높이에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널리 인재를 구하는 일에 소홀하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참신하고 깨끗하고 능력 있는 새로운 인물들의 발굴과 등용이다. 또 다시 ‘그 나물에 그 밥’,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다면 시민들의 민주에너지를 얻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개혁적 조치는 요원하게 된다.

윤기종 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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