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나요. 만약 󰡐별로 없다󰡑는 대답을 한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와 반대로󰡐물론 있지󰡑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 친구일 경우죠. 친구 앞에 󰡐좋은󰡑이 붙는 것입니다. 사실 좋지 못한 친구는 없는 편이 좋고, 보통 친구라면 좋은 친구로 만들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니,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친구가 없다는 책임은 친구를 못 갖는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가 마음을 열어놓고 인간적인 접촉과 인격적인 사귐을 아끼지 않았다면 선한 친구는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좋은 친구를 갖지 못합니다. 또한 지나치게 아집이 강하거나 자기주장만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사람도 친구는 드물겠지요.

사람이란 모두 제각기 좋은 점과 선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좋은 점을 상대방에게 나누어 주고, 상대방의 훌륭한 점은 내가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들의 신체에는 동맥과 정맥이 있어 서로 유기적인 활동을 거듭하듯이 우정도 서로 배우고 돕는 가운데 발전하는 것이니까요.

곧 동짓날이 다가옵니다.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동짓날에 돌아가신 어머니께 다녀오던 영조가 거리의 노인들에게 팥죽을 나눠 주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친구가 팥죽을 만들어줍니다. 본래 음식을 잘 하는 친구라 가끔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만 처음 동지팥죽을 받았던 그 겨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팥죽을 만들어 먹지 않은지 오래되었거든요. 아마도 지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내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때로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가 손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을 친구가 있는지, 살림이 어려워 쌀 한 말쯤 내 달라고 해도 선뜻 내어줄 수 있는 친구는 있는지….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그런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마음이 전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도 친구에게 배웁니다. 기다림과 베푸는 온정과 이해심이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최선의 방법임을. 그래서 나도 조금씩 친구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조금은 차갑고, 이기적이고, 사랑하는 방법에 익숙치 않았던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거지요.

친구를 갖고 싶은 사람은 친구를 사랑해야 합니다.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친구를 사랑한다는 뜻이며 진실한 신뢰가 있는 사랑이라면 언제나 깊은 우정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 있습니다.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에게 편지 한 장 쓰면 어떨까요.

차가운 겨울이 따뜻하게 깊어질 겁니다.

강미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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