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아이가 혼자 집을 나선다. 타박타박 걸어 도착한 곳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자주 들렀던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아이는 눈에 보이는 대로 눈깔사탕, 박하사탕 등을 양껏 담는다.

“얘, 이것을 다 살 돈은 있니?” “그럼요, 돈 많아요.” 아이는 주먹을 펴서 아저씨의 손에 은박지로 잘 싼 체리 씨 여섯 개를 올려놓는다. 아저씨는 자기의 손바닥을 잠깐 바라보더니 부드러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돈이 조금 남는구나. 거스름돈을 내주마.”

아이는 커서 열대어 가게의 주인이 되는데 물고기를 사러 온 남매를 보곤 그 날의 비밀을 안다. 당연히 그 남매도 거스름돈을 받아 즐겁게 가게 문을 나섰고. 이거 실화냐고? 그렇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폴 빌리어드 글, 류해욱 옮김, 문예출판사)는 저자의 어릴 적 엉뚱 기발하고 감동적인 경험담을 엮은 책이다. 끊임없이 말썽을 부리는 저자 때문에 집은 물론이고 온 동네가 조용할 날이 없지만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제대로 보여준다.

저자가 만난 어른들은 한결같이 아이가 행여 다치지 않을까 살뜰하게 챙기고, 짐짓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아량도 잊지 않는다. 물론 호되게 야단을 치기도 하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이 있다.

그런 사랑과 관심을 받고 나쁜 길로 빠지기는 쉽지 않을 듯. 저자가 원래 제목을 ‘Growing Pains(성장통)’이라 지은 이유를 알겠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다치는 과정은 삶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며, 그 바탕에는 가족과 이웃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처음 만난 세상도 따뜻했다. 그 때 나는 일곱 살이었는데 생일이 빨라 초등학교 1학년이 되다 보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혼자 외할머니 집을 가겠다고 버스를 탔는데, 첫 심부름인 만큼 정신을 차리자는 결심은 겨울 햇살과 무릎 위 고사떡의 온기에 사라져 버리고..

세상에나, 눈을 뜨니 버스는 온통 양복 입은 아저씨들로 북적이지 뭔가.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아무 생각이 안 난다고 하더니 내가 그랬다. 머릿속이 하얘서 울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떤 언니가 말을 건넸다. “얘, 나랑 같이 내리자.”

나는 지금도 나를 외할머니 집에 데려다 주고 또각또각 멀어져 간 구두 소리를 잊지 못한다. 내가 가끔 지인 아닌 사람에게 친절한 마음을 한 조각 내주는 건 희미하게 남은 그 밤의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실화냐고 묻는 질문이 안타깝다. 요즘 아이들이 그 많은 호기심을 꾹꾹 누르고 말 잘 듣는 아이로 자라야 하는 현실이, 이웃 어른의 배려를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없는 세상이 속상하다.

오늘도 텔레비전 뉴스나 인터넷 기사는 온갖 거칠고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넘친다. 그런 이야기가 진짜가 아니라 위그든 씨나 착한 언니가 가까이 사는 현실이 진짜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나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황영주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