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천재적 감성을 지닌 청년이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생기는 심리적 갈등과 의식의 상태를 서간체 형식의 산문으로 써 내려간 작품으로, 괴테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품에서 로테를 사랑한 불우한 청년으로 등장한 베르테르는 결국 권총으로 자살을 택한다.

이후 유럽 사회는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게 된다. 노란 조끼와 바지, 파란 프록코트와 둥근 펠트모자까지 똑같이 착용하고 권총으로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모방한 자살자는 전 세계적으로 2,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관계로 이 소설은 뜻하지 않게 우울증과 자살을 전염시켰다는 깊은 오명을 받게 된다.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이의 자살에 영향을 받아 자살을 택하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베르테르 효과’라고 명명했다. 이를 또 다른 말로 동조자살 혹은 모방 자살이라고 한다.

오늘날 성인 100명 중 3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2020년이 되면 우울증이 심장질환 다음으로 위협적인 질병이 될 것이라는 세계보건기구의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울증 환자 수는 전체 인구의 1.1% 정도로 본다. 문제는 우울증이 의심되는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치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면 국제질병분류기호에 따라 진단서에 F로 시작되는 병명이 기록되고 이는 취업과 승진뿐만 아니라 보험가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이익뿐만 아니라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더더욱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라기보다 조기 치료 시 완치율이 70~90%에 이르는 뇌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동양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우울증을 정신질환으로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짙다. 그만큼 우울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두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유명연예인들의 자살과 모방 자살이 잇따를 때도 한국인들은 우울증의 근본 문제에 대한 접근보다는 악플과 사이버 모욕죄 정도의 접근을 보일 정도로 미약했다.

사실 청소년기나 갱년기에 겪는 우울증도 우리는 극복해야 할 하나의 과정 정도쯤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의 치료만 해도 좀 더 활기찬 삶을 영위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미 정신의학회는 우울증 자가 진단 기준으로 다음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동일한 시기에 2주간 지속적으로 나타나거나, 예전과 기능 차이를 나타내면 우울증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상담을 권한다. 주관적 설명과 타인의 관찰에 의해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을 보일 때, 식이 조절을 하지 않는데도 체중 감소 또는 증가가 나타날 때, 거의 매일 불면 또는 과수면 증상이 나타날 때, 거의 매일 정신적 흥분 또는 지체 증상이 나타날 때, 거의 매일 피로감을 느끼거나 에너지 상실이 나타날 때, 거의 매일 단순한 자기 비난, 무가치감 또는 과도하고 무적절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 등이다.

몇 해 전 사회적으로 명망 있던 분이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더더욱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뛰어 내렸다는 얘기를 듣고 남아 있는 식구들의 슬픔과 죄책감 또한 얼마나 클 것인가를 걱정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이러한 이들에 대한 심리적 부검 등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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